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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하는 지방경제]일감없어 반강제 휴가… “그나마 안잘려 다행”
경향신문 2009-01-29
ㆍ조선사 몰린 목포 등 직격탄… 어음부도율 급등
ㆍ월급도 ‘싹둑’… 실업자 쏟아져 무료급식소 북적
지방 경제가 위기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적잖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그나마 돌아가는 생산 현장에서는 일감이 부족해 직원들이 사실상 반강제 휴가를 떠나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지방 경기 악화에 따른 미분양 사태로 시공사들이 자금난을 겪으며 몇 년 째 아파트 완공이 미뤄지고 있다. 광주 | 김주현기자
미국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아가면서 굴뚝산업이 주력인 지방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는 형국이다.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지방의 어음부도율은 0.20%로 서울(0.03%)보다 6배나 높았다. 특히 광주의 어음부도율은 0.37%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경남(0.37%), 대구(0.25%), 부산(0.24%) 등의 순이었다. 지난해 12월 부도 제조업체수도 서울이 30곳으로 전달에 비해 2곳 줄었지만 지방은 82곳으로 전달에 비해 10곳이 늘었다.
◇광주·전남지역 건설·조선업체 직격탄 =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남동에서 건축자재 대리점을 운영하는 이모 사장(35)은 1년 전만 해도 한 달에 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요즘에는 5000만원도 버거운 상황이다.
지난해 9월 미국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 따른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덩달아 피해를 입게 됐다. 광주 지역 건설업체들이 아파트 분양을 미루면서 수익을 냈던 리모델링 주문도 크게 줄었다.
특히 최근에는 광주지역을 연고로 한 대주건설의 퇴출과 삼능건설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결정되면서 이씨의 사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하루 매출이 5분의 1로 떨어지고, 건설자재 주문도 끊겼다. 이 사장은 “거래처가 350곳 정도 되는데 지난해 가을 이후 40~50곳은 문을 닫았다”며 “자재대금 독촉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거래처를 찾아가면 셔터가 내려져 있고, 지금까지 떼인 돈만 1억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퇴출 결정이 내려진 C&중공업 등 중·소형 조선업체가 몰려 있는 전남 목포 등 서·남해안 지역 경제는 극도로 위축돼 있다. C&중공업 총무팀 관계자는 “직원들의 월급이 3개월째 밀렸고, 협력업체 19곳에도 지난 여름 이후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C&중공업의 체불금은 현재 728억원가량에 이른다. C&중공업의 협력업체로 트레인 등 장비운영을 담당하는 ㅌ사는 지난해 7월부터 C&중공업으로부터 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ㅌ사 직원들은 지난해 가을 이후 월급을 50%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전남 지역은 57개 중소 조선사에서 2만5000여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연간 5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C&중공업 퇴출로 지역 경제를 떠받쳤던 조선업 기반이 붕괴되고, 업체의 줄도산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제조업체 잇단 가동 중단 = 대구·경북 지역의 공단 노동자들은 우울한 설 연휴를 보냈다. 판매 부진으로 업체들이 설비 가동을 줄이거나 중단했고 설 상여금은 대폭 줄었다.
포항철강관리공단이 최근 입주업체 10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설 연휴 기간에 설비가동을 중단한 업체는 86개사로 지난해(74개사)보다 증가했다. 일감이 없다보니 휴무일은 늘어 설을 전후해 9일 이상 휴무하는 업체가 14개사였고, 길게는 17일간 쉬는 업체도 있었다. 이 공단 입주업체들이 명절 연휴에 9일 이상 쉬는 경우는 올해가 처음이다.
휴무일은 늘었으나 설 상여금은 줄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중부지역본부가 설 연휴를 앞두고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입주기업 133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0%인 40개사가 상여금 지급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경주지역 제조업체 가운데 올해 설 상여금을 지급한 회사도 지난해에 비해 10%가량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대구 인근에 있는 제과공장에 근무하는 박모씨(56)는 “회사가 어렵고 인력 감축 얘기가 나오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여서 상여금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울산, 수출부진으로 공장가동률 떨어져 = 국내 최대 공업도시인 울산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 수출의 17%를 차지하고 있는 울산은 세계경제 침체로 주력산업인 자동차와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이 급감하면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소비는 급감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감산은 곧바로 협력 업체들의 공장 가동률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 하청 업체 관계자는 “현대차가 주·야간조 각 10시간 근무에서 각 8시간 근무체제로 변경된 이후 협력업체들도 8시간 근무제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울산 지역의 대형 소매점 판매액은 전달에 비해 10.4% 급감했다. 이는 전국 평균(-4.7%)보다 2배 이상, 7대 도시(-2.7%)에 비해 3배 이상 감소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울산지역 실업자 수는 2만5000명으로 전년 같은 달에 비해 1만1000명(83.7%) 증가했다.
공장 가동이 줄면서 반강제적으로 휴가를 떠나는 노동자들도 많다.
충북 청주에 있는 하이닉스반도체의 협력업체인 ㅇ사 직원들은 설 연휴부터 2월 중순까지 일주일 이상 의무 휴가를 가야 한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월급을 30% 줄이는 대신 휴가를 늘려가기로 한데 따른 것이다. 이 회사 김모 과장은 “월급이 줄었지만 지금같은 분위기에서 해고당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일자리를 잃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늘고 있다. 기업들이 경기침체로 경영난이 가중되자 외국인 노동자들을 우선적으로 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안산에 있는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문을 닫는 회사들이 많아지면서 무료 숙식을 제공하는 쉼터를 찾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최근들어 50%나 늘었다”고 말했다.
<오창민·김주현·박수정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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